한국이슬람지하드워치
꾸란

평화의 종교가 가르치는 것.....폭력

작성자 워치독 작성일16-12-06 19:34 조회3,906회 댓글0건

본문

 

질문:

꾸란이 정말로 폭력을 조장하는 많은 구절들을 가지고 있는가?

요약된 해답

꾸란은 무슬림들이 이슬람의 지배를 위하여 불신자들과 전쟁을 하라고 요구하는 적어도 109개의 구절을 가지고 있다. 일부는 아주 구체적이어서 불신자들이 있는 곳에서 머리와 손가락을 자르고 이교도들을 죽이라고 명령한다. 그 투쟁에 합류하지 않은 무슬림들은 ‘위선자’로 부르며 공격에 가담하지 않으면 알라가 그들을 지옥에 보낼 것이라고 경고한다.

폭력에 관한 구약의 모든 구절들과는 달리 꾸란의 폭력에 관한 구절들은 개방적이라서 그 구절들이 그 본문의 역사적인 상황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구절들은 알라의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말씀의 일부분이고 꾸란에 있는 어떤 것과 마찬가지로 관련이 있고 본질적인 것이다.

오늘날 무슬림들 대부분은 그들의 거룩한 책의 폭력에 관한 많은 구절들을 그들 자신의 도덕적 선입관이 정당하다고 여기는 것을 따라서 폭력적으로 해석하는 개인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 옹호자들은 역사적 사실을 얼버무리고 총체적으로 정밀한 조사에 응하지 않는 빈약한 논리로 그들이 선호하는 요구를 만족시킨다. 문제는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 나쁜 이념이라는 것에 주목하는 것이 여전히 중요하다.

불신자들이 굴종을 받아들이고 이슬람으로 개종하던지 아니면 죽임을 당할 때까지 불신자들에 대항하여 싸울 것을 요구하는 많은 구절들을 폐기하거나 상쇄해줄 관용과 평화에 관한 구절들은 불행히도 거의 없다. 꾸란에서 발견되는 폭력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무함마드의 전쟁에 관한 유언-그리고 그의 동료들의 유언-은 세계 역사를 통하여 피와 눈물의 노정을 만들어왔다.

 

꾸란:

 

꾸란 (2:191-193) - "그들을 발견한 곳에서 그들을 살해하고 그들이 너희들을 추방한 곳으로부터 그들을 추방하라 박해는 살해보다 더 가혹하니라......만약 그들이 싸움을 단념한다면 알라는 그들에게 관용과 자비를 베풀 것이라 박해가 사라지고 종교가 알라만을 위한 것이 될 때까지 그들과 싸우라.“ 이 구절의 역사적 배경은 방어적인 전쟁이 아닌데 왜냐하면 무함마드와 그의 무슬림들은 메디나로 이주하였을 뿐이었고 그들의 메카 대적들에 의하여 공격받지 않았다. 사실 그 구절들은 공격적인 전쟁을 충동하며 그에 따라 무슬림들은 메카인들을 메카에서 몰아내게 된다(나중에 그렇게 하였다). 그러므로 일부 무슬림 번역가들에 의한 ”박해“라는 단어 사용은 솔직하지 않다(박해에 해당하는 무슬림들의 실제 단어는 ”idtihad"이고 압제를 의미하는 “z-l-m”의 변형된 것인데 그 구절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 실제 아랍어는 불신앙 또는 불신앙과 유혹을 초래하는 무질서를 의미할 수 있는 “fitna"에서 유래된다. 전체적으로 볼 때 상황은 분명해져서 폭력은 ”종교가 알라만을 위한 것이 되고“ 불신자들이 그들의 불신앙을 포기할 때까지 정당화된다.

 

꾸란 (2:244) - “알라를 위하여 싸우라 알라는 모든 것을 들으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시라.”

 

꾸란 (2:216) - “비록 싫어하는 것이지만 너희에게 싸우는 것이 허락되었노라 그러나 너희가 싫어해서 복이 되는 것이 있고 좋아해서 너희에게 악이 되는 것이 있나니 알라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계시니라.” 이 구절은 폭력이 미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설정할 뿐 아니라 싸우는 것이 단지 자기 방어에만 한정된다는 통념에도 모순되는데 이 구절을 듣는 자들은 명백히 그 당시에 공격당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디스에서 우리는 실제로 이 구절이 무함마드가 약탈물을 얻기 위하여 자기 부하들이 대상들을 공격하도록 자극하고 있을 때 말하여진 것이었다.

 

꾸란 (3:56) - “불신자들이여 내가 너희에게 현세가 내세에서 가혹한 징벌을 내릴 것이라 그러나 그들은 구원자를 찾지 못할 것이라.”

 

꾸란 (3:151) - “알라는 믿음이 없는 자들의 심중에 공포를 불어 넣으리라 이들은 아무런 능력도 없는 자들을 알라와 비유하려 했기 때문이라.” 이 구절은 직접적으로 다신교도들에 관하여 말하지만 또한 기독교인들도 포함하는데 그들이 삼위일체설을 믿기 때문이다(무함마드는 ‘알라와 비유’라고 잘못 알고 있었다).

 

꾸란 (4:74) - “그로 하여금 알라를 위해 싸우도록 하여 내세를 위해 현세의 생명을 바치도록 하라 알라를 위해서 싸우는 자가 살해를 당하건 승리를 거두건 알라는 그에게 커다란 보상을 주실 것이라.” 이슬람의 순교자들은 초기 기독교인들과는 달리 순종하여 죽었다. 이 무슬림들은 알라를 위하여 살인과 파괴를 하다가 전쟁에서 살해되었다. 여기에 오늘날의 자살폭탄 테러범들에 대한 신학적인 근거가 있다.

 

꾸란 (4:76) - “믿는 자들은 알라를 위하여 싸우고...”

 

꾸란 (4:89) - “그들이 그랬듯이 너희도 불신자가 되기를 원하며 너희가 그들과 같이 되기를 바라거늘 너희는 그들이 알라의 길로 들어올 때까지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친구로 삼지 말라 그럼에도 그들이 배반한다면 그들을 포획하고 그들을 발견하는 대로 살해할 것이며 그들로부터 친구나 후원자를 찾지 말라.”

 

꾸란 (4:95) - “아무런 장애도 없이 남아있는 믿는 자와 싸움에 출전하여 재산과 생명을 바치며 싸우는 투사들이 같을 수 없거늘 알라는 남아 있는 자들보다 재산과 생명을 바쳐 싸우는 자들에게는 더 큰 은혜를 베푸시며 또한 이 두 부류에게도 알라의 보상이 약속되었노라 알라는 남아 있는 자들보다 싸우는 자들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시니라.” 이 구절은 폭력에 가담하지 않는 “평화를 사랑하는” 무슬림들을 비방하는데 그들이 알라 앞에서 가치가 적다는 것을 그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이것은 “지하드”가 꾸란에서 성전을 의미하지 않으며 단지 영적인 투쟁일 뿐이라는 근대적인 통념을 뒤집는다. 이 구절에서 사용된 아랍어 뿐 아니라 이 구절은 명백히 영적인 것에 관련한 것이 아닌데 육체적인 불구자가 싸움에서 면제되었기 때문이다. (하디스는 이 구절의 배경이 지하드에 가담할 수 없었던 한 맹인의 항의에 대한 대응이었음을 알려주고 이것은 그 구절의 다른 번역에서 반영되었다).

 

꾸란 (4:104) - “적을 추적할 때 약한 마음을 갖지 말라 너희가 고난을 당할 때 그들도 그와 같은 고난을 당하노라...” 부상당하고 도망치는 적을 추적하는 것이 정말 자기방어의 행위인가?

 

꾸란 (5:33) - “실로 알라와 선지자에 대항하여 지상에 부정을 퍼트리는 자들은 사형이나 십자가에 못박히거나 그들의 손발이 서로 다르게 절단되거나 또는 추방을 당할 것이라 이렇듯 그들은 현세에서 치욕을 그리고 내세에서는 무거운 벌을 받을 것이라.”

 

꾸란 (8:12) - “불신자들의 마음을 두렵게 하리니 그들의 목을 자르고 그들 각자의 손가락을 자르라.” 이 구절을 영적인 투쟁으로 해석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꾸란 (8:15-16) - “믿는 자들이여 너희가 싸움터에서 불신자들을 만날 때 그들로부터 등을 돌리지 말라 그러한 날에 등을 돌리는 자는 그것이 전쟁을 위한 준비나 어떤 무리에 합류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이는 분명 알라의 분노를 자아낼 것이며 그의 주거지는 지옥이 되리니 최후가 저주스러우리라.”

 

꾸란 (8:39) - “무질서가 사라지고 종교가 온전히 알라만을 위한 것이 될 때 까지 싸우라.” 일부 번역은 “무질서”를 “박해”로 번역하지만 이 단어의 전통적 해석은 역사적 배경에 의하여 뒷받침되지 않는다(꾸란 2:293의 주석을 보라). 메카인들은 무함마드가 순례기간동안 그들의 도시에 접근하는 것을 거부하였을 뿐이다. 무함마드가 자신이 쫓겨나기 전에 메카에 대하여 전쟁을 선포한 이후로 다른 무슬림들은 무장하지 않은 조건으로 거기를 여행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메카인들은 그들의 종교를 방어하는 행동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우상들을 부수고 무력으로 이슬람을 수립하려는(그는 나중에 그렇게 하였다) 것이 무함마드의 의도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의 비난받을 부분은 “종교가 알라만을 위한 것”이 될 때 까지 싸우라는 부분인데 진정한 폭력의 정당성은 상대방의 불신앙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Sira에 따르면(Ibn Ishaq/Hisham 324) 무함마드는 나아가서 “알라는 경쟁자가 없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꾸란 (8:57) - “그대가 전쟁에서 그들을 만난다면 그들을 따르는 자들을 두렵게 하라 아마도 그들에게 교훈이 되리라.”

 

꾸란 (8:59-60) - “불신자들이 나의 벌을 피하였다고 생각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실로 그들은 피할 수 없노라. 군대와 무기로 너희가 할 수 있는 한 그들에 대항할 준비를 하라 하셨으니 그것으로 알라의 적과 너희들의 적을 두렵게 하라.”

 

꾸란 (8:65) - “선지자여 믿는 자들을 싸우게 하라...”

 

꾸란 (9:5) - “금지된 달이 지나면 너희가 발견하는 불신자들마다 살해하고 그들을 포로로 잡거나 그들을 포위할 것이며 그들에 대비하여 복병하라 그러나 그들이 회개하고 예배를 드리며 이슬람 세를 낼 때는 그들을 위해 길을 열어 주리니...” 이 구절에 따르면 무슬림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것이다. 예배(salat)와 이슬람 세(zakat)는 이슬람교의 5가지 기둥들에 속한다.

 

꾸란 (9:14) - “그들과 싸우라 알라는 너희의 손으로 그들에게 벌주어 그들을 수치스럽게 하고...”

 

꾸란 (9:20) - “믿으며 자신의 집을 떠나 알라의 길에서 그들의 재산과 생명을 바치며 싸우는 자들은 알라 앞에서 가장 큰 보상을 받을 것이니 이들이 승리한 자들이라.” 여기서 “싸우는”으로 말하여진 단어는 지하드(아랍어)이다.

 

꾸란 (9:29) - “알라와 내세를 믿지 아니하며 알라와 선지자가 금기한 것을 지키지 아니하고 진리의 종교를 따르지 아니한 자들에게 비록 그들이 성서의 백성이라 하더라도 항복하여 인두세를 지불할 때까지 그들에 대항하여 싸우라 그들은 스스로 저주스러움을 느낄 것이라.” “성서의 백성”은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이것은 알라로부터 마지막 “계시들”가운데 하나였고 이 계시는 집요한 군사적 팽창을 추진하여 무함마드의 추종자들은 그 다음 100년 안에 기독교 세계의 3분의 2를 정복하였다. 이슬람은 모든 다른 사람들과 종교를 지배하기를 원한다.

 

꾸란 (9:30) - “유대인들은 에즈라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하고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주장하고 있노라 이는 이전에 불신한 자들의 말과 유사하니 알라가 그들을 욕되게 하실 것이라 그들이 진실에서 멀리 현혹되어 있기 때문이라!”

 

꾸란 (9:38-39) - “믿는 자들이여 너희에게 무슨 일이 있느뇨 알라를 위해 전쟁에 임하라 하매 너희가 주저하였노라 이는 너희가 내세보다 현세에 만족 하고 있기 때문이라 현세의 삶이 내세에 가면 아무런 의미가 없노라 너희가 전쟁에 임하지 아니하였다면 너희에게 고통스러운 벌을 주셨을 것이오 너희 대신에 다른 백성을 선택하셨을 것이라...” 이 구절은 싸우기를 거절하는 자들이 지옥으로 가는 벌을 받을 것이라는 경고이다.

 

꾸란 (9:41) - “가볍게든 또는 무겁게 무장하여 나아가라 너희의 재산과 너희의 생명을 바쳐 알라를 위해 싸우라 너희가 알고 있다면 그것이 너희에게 더욱 좋으리라.” 그다음 구절(9:42)을 보면 - “눈에 보이는 이익이 있고 여행이 쉬웠다면 아마 그들은 그대를 따랐을 것이나 거리가 그들에게 멀었도다...”이 구절은 무함마드가 자기방어를 위해서만 싸웠다는 통념을 반박하는데 이 구절은 전투가 집에서 먼 지역에서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역사가들에 따르면 이 경우에는 다른 나라인 기독교인의 땅을 의미한다).

 

꾸란 (9:73) - “예언자여 불신자들과 위선자들에게 대항하여 싸우라 그들에게 엄하게 대항하라 지옥이 그들의 안식처이며 종말이 저주스러울 것이라.” 이슬람을 거부하는 자들을 인간성을 말살하며 무슬림들에게 그들이 지옥 불에 탈 화목일 뿐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며 학살을 정당화하는 것을 쉽게 만들고 있다. 이 구절은 또한 오늘날의 독실한 무슬림들이 이슬람을 안 믿는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꾸란 (9:88) - “그러나 선지자와 그리고 그분과 함께 믿음을 가진 자들은 그들의 재산과 생명을 바쳐 싸우니 그들은 복을 받을 것이요 번성할 것이라.”

 

꾸란 (9:111) - “알라를 믿는 자 가운데서 그들의 영혼과 그들의 재산을 사시고 천국을 주실 것이라 그것은 알라를 위하여 싸우고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자를 위해 구약과 신약과 꾸란에 약속된 것이라 알라보다 약속을 잘 지키시는 분이 누구이뇨 너희가 알라와 거래한 것에 기뻐하라 그것이 영광된 승리라.”

 

꾸란 (9:123) - “믿는 자들이여 너희 가까이에 있는 불신자들에게 대항하여 싸우고 그들로 하여금 너희가 엄함을 알게하라...”

 

꾸란 (17:16) - “우리들이 한 고을을 멸망코자 했을 때 안이한 생활을 누리던 자들에게 명령을 내렸노라 그러나 저들은 그 안에서 거역하였기 때문에 이 고을에 대한 그 명령이 진실임을 입증하여 우리들은 그 고을을 완전히 파괴한다.” 범죄는 도덕적인 죄인데 처벌은 “완전한 파괴”라는 것을 주목하라. (9.11공격을 명령하기 전에 오사마 빈 라덴은 먼저 미국인들에게 이슬람을 받아들일 것을 발표하였다).

 

꾸란 (18:65-81) - 이 우화는 명예살인에 대한 신학적인 근거를 제공하는데 여기서 가족의 한 구성원이 살해되는데 이유는 그가 배교 또는 도덕적인 추태로 그 가족에게 수치를 주었기 때문이다. 이야기(이 이야기는 유대교 또는 기독교 경전에는 없다)는 “특별한 지식”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모세에 관하여 이야기하는데 그는 겉으로 보기에 이치에 맞지 않는 듯한 일들을 하지만 그 후 나중에 설명에 따라서 정당화된다. 그러한 행동 가운데 하나가 특별한 이유 없이 한 소년을 살해하는 것이다(18:74). 그러나 이 현인은 나중에 그 소년이 “불순종과 배은망덕”으로 자기 부모를 “슬프게” 할 것을 염려하였다고 설명한다. 그는 살해되었고 그래서 알라가 그들에게 “더 좋은” 아들을 줄 수 있었다. (주석: 이것이 샤리아 법에 의하여 명예살인이 명령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Reliance of the Traveller (Umdat al-Saliq)는 부모 또는 조부모가 자식들을 죽일 경우 살인에 대한 처벌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한다(0.1.1-2).)

 

꾸란 (21:44) - “우리들은 이자들이나 그의 선조들을 즐겁게 해주고 오래 살게 해주었다 우리들이 이 땅에 와서 그 끝에서부터 침식하고 있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하는가. 대체 그들이 승리자인가?”

 

꾸란 (25:52) - “그러므로 불신자들을 따르지 말고 최대한의 분투함으로 저들과 대적하라” “대적하라”는 지하드인데 분명히 개인적인 상황이 아니다. 이것이 메카 계시라는 것을 아는 것이 또한 중요하다.

 

꾸란 (33:60-61) - “위선자들과 마음이 병든 자들과 그 도시에서 교사하는 자들이 단념하지 않는다면 알라가 그대로 하여금 그들을 지배하도록 하리니 그때 그들은 그 안에서 그대의 이웃이 되지 않을 것이며 체류함이 잠깐 동안에 불과하리라 그들은 가는 곳마다 저주를 받을 것이며 체포되어 살해 되리라.” 이 구절은 세 그룹에 대하여 살해(다른 번역에서는 “무자비”와 “끔찍한 살인”으로 표현되었다)를 명령하는데 위선자들(“알라를 위해서 싸우기”(3:167)를 거부하고 따라서 무슬림이 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는 무슬림들)과 “마음이 병든” 자(이것은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포함한다; 5:51-52)와 “소란을 피우는 자들” 또는 무함마드 전기 작가에 따르면 이슬람에 대적하는 말만하는 사람들을 포함하는 “교사자들”이다. 희생자들은 무슬림들에 의하여 색출되고 이것이 오늘날 테러리스트들이 하는 일이라는 것이 주목할 가치가 있다. 이 구절이 단지 메디나에서만 적용되는 것을 의미한다면 왜 이 구절이 알라의 영원한 말씀에 포함되어 무슬림들에게 세세토록 전해지는지 알 수 없다.

 

꾸란 (47:3-4) - “알라를 거부하는 자들이 거짓을 따름에 반해 믿는 자들은 알라께서 내려주신 진리를 따르기 때문이라 이렇듯 알라는 비유로서 인간에게 교훈을 내리시니라 너희가 전쟁에서 불신자를 만났을 때는 저들의 목들을 때리라 너희가 완전히 저들을 제압했을 때는 저들을 포로로 취하고,” 알라를 거부하는 자들은 전투에서 제압되어야한다. 이 구절은 계속해서 알라가 그 더러운 일을 자신이 하지 않는 유일한 이유는 무슬림들의 신실함을 시험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살인하는 자는 시험에 통과한다. “알라께서 원하셨다면 저들에게 징벌을 내렸을 것이라 그러나 다른 자들에 비유하여 시험코자 하심이라 그러나 알라의 길에서 살해된 자 있다면 알라는 그의 행위가 결코 손실되지 않게 하실 것이라.”

 

꾸란 (47:35) - “휴전을 촉구하는 약자가 되지 말라 너희가 저들 위에 있노라(Shakir: ”더 좋은 손을 가지고 있노라“) 알라가 너희와 함께 하시어,”

 

꾸란 (48:17) - “장님이나 불구자 그리고 환자가 출전하지 아니함은 죄악이 아니라 알라는 당신과 선지자에게 순종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로 하여금 강이 흐르는 천국에 들게 하시며 외면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에게 고통스러운 벌을 내리시니라.” 현대의 옹호자들은 때로는 지하드가 ‘영적인 투쟁’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장님, 불구자, 환자가 왜 면제되는가?

 

꾸란 (48:29) -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도이며 그와 함께하는 자들은 불신자들에 대항하여 강하고(무자비하고) 그들 사이에서는 서로 자비하니라...” 이슬람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종교적 상태에 근거하여 적용되는 매우 다른 두 개의 기준이 있다.

 

꾸란 (61:4) - “실로 알라는 당신의 명분을 위하여 싸우는 자들을 사랑하시니라.” 평화의 종교, 정말로! 61:9이 이 구절을 뒤따른다: “선지자를 통하여 복음과 진리의 종교를 보내시고 꾸란을 다른 모든 종교 위에 두신 분이 알라이시라 그러나 불신자들은 그것을 싫어하더라.”

 

꾸란 (61:10-12) - “믿는 자들이여 너희가 고통스러운 징벌로부터 구제될 수 있는 거래를 가르쳐 주리라 그것은 너희가 알라와 그분의 선지자를 믿으며 알라의 사업을 위해 너희의 재산과 생명을 바쳐 싸우는 것이라 너희가 알고 있다면 그것이 너희를 위한 복이 될 것이라 알라께서 너희의 잘못을 용서하사 강물이 흐르는 천국으로 인도하시어 아름다운 낙원에서 살게 하여 주실 것이라.” 이 구절은 전투에서 주어졌다. 이 구절은 아랍어 지하드를 사용한다.

 

꾸란 (66:9) - “선지자여 불신자들과 위선자들에 대항하여 싸우되 그들에 대하여 엄격하라 그들의 거주지는 지옥이니 그들의 말로가 불행할 것이라.” “지하드”의 어근이 되는 단어가 여기에 사용되었다. 배경은 분명히 성전이며 폭력의 범위는 자신들이 무슬림들이라고 여기나 그러한 행동을 하지 않는 “위선자들”을 포함하여 확대된다.

 

하디스로부터:

 

부카리 (52:177) - 알라의 사도가 “너희들이 유대인들과 싸우고 유대인이 그 뒤에 숨어있는 바위가 ‘오 무슬림! 내 뒤에 유대인이 숨어있으니 그를 죽여’라고 말할 때까지 종말은 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부카리 (52:256) - 이교도들의 여자들과 아이들이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있는 밤에 이교도 전사들을 공격하는 것이 허용될 수 있는지 선지자에게 질문하였다. 선지자는 “그들은(여자들과 아이들) 그들(이교도들)에 속한다.”라고 대답하였다. 이 명령에서 무함마드는 인지된 적을 죽이는 과정에서 비-전투원을 죽이는 것이 허용된다는 예를 확립하였다. 이것이 많은 이슬람 폭탄 테러범들을 정당화한다.

 

부카리 (52:220) - 알라의 사도가 “나는 테러로 승리하도록 되어 있다”라고 말하였다.

 

아부 다우드 (14:2526) - 선지자가(그에게 평화가 임하기를) 말하였다: 믿음의 근본은 세 가지이다: “알라만이 유일한 하나님이다”라고 말하는 자를 죽이지 않는 것과 그가 무슨 죄를 지을 지라도 그를 불신자로 선포하지 않는 것과 그의 어떠한 행동에 대하여도 그를 이슬람에서 제명하지 않는 것이며 알라가 나를 선지자로 보낸 날부터 나의 공동체의 마지막 사람이 Dajjal (Antichrist)과 싸우게 될 때까지 지하드는 계속될 것이다.

 

아부 다우드 (14:2527) - 선지자가 말하였다: 알라를 위하여 싸우는 것(지하드)은 경건하든 경건하지 안든 모든 통치자들과 마찬가지로 너희들에게 의무이다.

 

무슬림 (1:33) - 알라의 사도가 말하였다: 나는 그들이 알라만이 하나님이며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도라고 증언할 때까지 모든 사람들에 대항하여 싸우도록 명령받았다.

 

부카리 (8:387) - 알라의 사도가 “‘그들이 알라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경배되어질 권리가 없다’라고 말할 때까지 사람들과 싸우도록 명령받았고 그들이 그렇게 말한다면 우리가 기도하는 것같이 기도하고 메카를 향하여 기도하며 우리가 살해하는 것같이 살해한다면 그들의 피와 재산이 우리에게 신성하게 될 것이고 우리는 정당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들에게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무슬림 (1:30) - “알라의 사도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알라를 제외하고는 신이 없다고 사람들이 선언하지 않는 한 사람들에 대항하여 싸우도록 명령받았다.”

 

무슬림 (1:149) “Abu Dharr가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 내가 말하였다: 알라의 사도여, 행위 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까? 그가 대답하였다: 알라를 믿고 그를 위하여 지하드를 하라....”

 

무슬림 (20:4645) -“....그가(알라의 사도) 그것을 하고 말하였다: 낙원에서 사람의 지위를 백배나 높은 등급으로 올려주는 행위가 있고 한 등급과 다른 등급과의 차이는 땅에서 하늘의 높이와 같다. 그가(Abu Sa'id)가 말하였다: 그 행위가 무엇입니까? 그가 대답하였다: 알라를 위하여 지하드 하라! 알라를 위하여 지하드 하라!”

 

무슬림 (20:4696) - “알라의 사도(그에게 평화가 있기를)가 말하였다: ‘알라를 위하여 싸우지도 않고 지하드(또는 결심)에 대한 어떠한 열의도 표시하지 않고 죽는 자는 위선자로 죽는 것이다.’”

 

무슬림 (19:4321-4323) - 무함마드가 무고한 어린 아이들이 불신자들에 대한 그의 부하들의 공격에서 살해되었다는 소식에 무함마드가 어깨를 으쓱했던 세 개의 하디스가 있다: 그의 반응은 “그들이 그들(적을 의미함) 가운데 있었다.”였다.

 

무슬림 (19:4294) - 알라의 사도(그에게 평화가 임하기를)가 누구든지 군대 또는 파견대의 지휘관으로 임명할 때 그는 특히 그에게 권고하였다....그가 말하였다: 알라의 이름을 걸고 그리고 알라를 위하여 싸우라. 알라를 믿지 않는 자들과 싸우라. 성전을 하라....다신교도인 너희들의 적들을 만날 때 그들을 세 가지 방식으로 초청하라. 그들이 이것들 가운데 어느 하나에 응대한다면 너희들 또한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어떠한 해악도 행하지 말라. 그들이 이슬람을 받아들이도록 초청하라; 그들이 너희들에게 응대한다면 그들을 받아들이고 그들과 싸우지 말라....그들이 이슬람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한다면 그들에게 이슬람세(Jizya)를 요구하라. 그들이 지불하기로 한다면 그들에게서 이슬람세를 받고 물러서라. 그들이 이슬람세 지불을 거절한다면 알라의 도움을 구하고 그들과 싸우라.

 

타바리 7:97 Ashraf를 살해한 다음 날 아침에 선지자는 “너희들의 지배하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살해하라”고 선언하였다. Ashraf는 시인이었는데 이슬람을 비방했기 때문에 무함마드의 부하에 의하여 살해되었다. 여기서 무함마드는 살해하라는 자신의 명령의 범위를 확대한다. 이어서 무고한 유대인 사업가가 단지 무슬림이 아니란 이유로 자신의 무슬림 동료에 의하여 살해되었다.

 

타바리 9:69 “불신자를 죽이는 것은 우리에게 작은 문제이다” 이슬람의 선지자 무함마드의 말이다.

 

타바리 17:187 “하나님을 두고 말하는데 우리가 떠났던 종교가 이 사람들이 따르고 있는 종교보다 더 낫고 올바르다. 그들의 종교는 피를 흘리며 거리를 끔찍하게 만들며 재산을 강탈하는 것을 중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전에 믿던 종교로 돌아갔다.” 이슬람으로 개종하였지만 알라의 이름으로 행하여지는 폭력과 약탈에 충격을 받은 후 그들의 실수를 알게 된 한 그룹의 기독교인들의 말이다. 평화의 종교로 되돌아가는 결정에 대한 대가는 칼리프 알리에 의하여 남자들은 참수되고 여자와 어린아이들은 노예가 되는 것이었다.

 

이븐 이스학/히샴 327: - “알라가 말하였다. ‘선지자는 포로들을 모으기 전에 살해하여야한다. 살해된 적은 땅에서 제거된다. 무함마드, 너는 이 세상의 욕망을 갈망하였다, 세상의 재물들과 포로들의 몸값은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알라는 종교를 전파하기 위해 그들을 살해하기를 원한다.’”

 

이븐 이스학/히샴 990: - ‘알라는 위대하다’를 외치면서 누군가의 머리를 자르는 것이 요즘 시대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고 누구든지 생각한다면 무함마드의 명령에 의하여 바로 그 관습이 생겨났다는 것이 여기에 있으며 무함마드가 입증할 것이다.

 

이븐 이스학/히샴 992: - “알라를 위하여 모든 사람과 싸우고 알라를 믿지 않는 자들을 살해하라.” 군사적 공격전에 무함마드가 자신의 부하들에게 준 가르침이다.

 

추가 설명들:

 

무슬림들이 자신들의 영토 안에 있는 모든 비-무슬림들을 살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그들의 종교가 평화스럽고 관용적인 종교라는 증거로 그들이 내세울 만한 것이 거의 없다. 이슬람이 지배하는 곳(중동과 파키스탄과 같이)에서 종교적 소수집단들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잔인한 박해로 고통 받고 있다. 이슬람이 소수집단인 곳(태국 필리핀, 유럽같이)에서는 무슬림들의 요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폭력의 위협이 있다. 두 가지 상황은 종교적인 테러리즘에 대한 정당성을 제공하는 듯하며 이것은 이슬람 근본주의에 있어서 집요하고 특징적이다.

그 이유는 분명하며 꾸란에서 시작된다. 종교적 관용과 보편적 형제애에 관한 현대적인 미덕들에 적합하게 해석될 수 있는 이슬람의 가장 신성한 책의 구절들은 거의 없다. 나중에 계시된 구절들에 의하여 명백하게 폐기된 초기 “메카” 계시들이 그러한 구절이었다. 이것이 무슬림 옹호자들이 - 꾸란이 완벽한 책이라고 주장하면서도-그들의 “도움”없이 꾸란을 해석하려고 시도하는 것에 관한 “위험들”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이유이다.

단지 역사 또는 신학적 구조 개념은 별도로 하고 꾸란의 폭력적인 구절들은 실제 집단학살과 대량학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것은 AD 1000년경부터 시작하여 5세기 동안 Ghazni 왕조 Mahmud의 피비린내 나는 정복으로 수 천 만 명의 힌두교도를 잔인하게 도살한 것을 포함한다. 그와 나중에 Tamerlane(이슬람의 징기스칸)이 단지 자신들의 사원들이 파괴되지 않도록 방어하는 것에 대하여 무수한 사람들을 도살하였다. 불교는 인도 땅에서 아주 최근에 제거되었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중동과 북아프리카와 유럽의 일부와 오늘날의 터키를 포함하여 무슬림 군대에게 점령된 지역에서 동일한 운명(비록 보다 느리게 되었지만)을 맞았다. 자랑스러운 페르시아 사람들의 고대 종교인 조로아스터교는 무슬림들에게 멸시받으며 현대 이란에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종교 안에 폭력이 아주 각인되어 이슬람은 다른 종교 또는 이슬람 내부에서 실제로 전쟁하는 것을 절대로 중지하지 않는다.

무함마드는 도시를 포위하고 남자들을 집단학살하고 여자들을 강간하고 그들의 아이들을 노예로 만들고 다른 사람들의 재산을 자기 것으로 취하였던 전쟁 지휘관이었다. 몇 가지 경우에서 그는 포위된 거주자들로부터 항복제안을 거절하고 포로까지 도살하였다. 부하들이 싸우는 것이 정당하지 않다고 느꼈을 때 그들이 싸운다면 노예들과 전리품을 그들에게 약속하면서 그리고 그들이 싸우지 않으면 지옥으로 그들을 위협하면서 부하들이 전투하도록 실제적으로 선동하였다. 무함마드는 전투에서 포로가 된 상처 입은 여자들을 보통 그들의 남편들과 가족들이 도살된 날에 부하들이 강간하도록 허용하였다.

대부분의 경우 무슬림 군대는 공격적인 작전을 하였고 이슬람의 가장 극적인 군사적인 정복은 무함마드가 죽은 후 수 십년이 지나서 실제적으로 무함마드의 부하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초기의 이슬람의 전쟁 원칙은 도시의 시민들이 저항한다면 그들을 괴멸시키는(남자들은 처형하고 여자들과 아이들은 노예로 취하였다) 것이었다. 현대 옹호자들이 무슬림들은 자기방어를 하는 과정에서 공격하였을 뿐이라고 자주 주장하나 이것은 무함마드의 시대로 돌아가서 이슬람 역사가들과 다른 이들의 글에 의하여 분명하게 반박되는 자가당착이다.

무함마드가 메디나에 이주한 후 단지 5년 만에 완전히 멸종된 꾸라이자 유대인들의 예를 생각해보자. 꾸라이자 유대인들의 지도자는 무함마드의 치명적인 대상(caravan) 약탈 공격에 대한 보복을 하기위하여 왔던 메카인 군대에게 그들의 도시가 포위되자 중립적인 태도를 선택하였다. 꾸라이자 유대인들은 양측으로 부터 어느 누구도 살해하지 않았고 메카인들이 돌아간 후에 무함마드에게 평화롭게 항복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슬람의 선지자는 꾸라이자의 모든 남자들을 참수하고 모든 여자들과 아이들을 노예로 만들고 무함마드 자신이 포로들 가운데 한명을 강간까지 하였다(무슬림 옹호자들은 이것을 “같은 날의 결혼”이라고 부른다).

현대 이슬람의 가장 존경받는 학자들 가운데 한 명인 세이크 Yusuf al-Qaradawi는 공개적으로 공격적인 지하드를 명령한다: “당신들이 추구하는 지하드에서 당신들은 적을 찾고 적을 침공한다. 이러한 형태의 지하드는 이슬람 국가가 이슬람의 말씀을 전파하고 그것이 가는 길에 있는 장애물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을[국가들을] 침공할 때만 여지가 있다.” 그 밖에 그는 “이슬람은 선제공격을 할 권리가 있다....이슬람은 하나님의 종교이고 이슬람은 전 세계를 위한 것이다. 이슬람은 사회제도와 전통의 형태로 있는 모든 장애물들을 파괴할 권리를 가진다....이슬람은 인간 본성을 왜곡시키고 인간 자유를 제한하는 그들의 치명적인 영향으로부터 인류를 해방하기 위하여 사회제도들과 전통들을 공격한다. 이슬람 지하드가 단지 이슬람의 본 고장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자들은 이슬람 방식의 삶의 위대성을 감소시킨다.”라고 말한다.

후계구도를 분명하게 하지 못한 무함마드의 실수는 그가 죽은 후에 계속적인 내전을 초래하였다. 무함마드를 가장 잘 아는 자들은 처음에 멀리 떨어져 있는 부족들이 이슬람을 떠나서 그들이 좋아하는 종교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도록 싸웠다(Ridda 또는 ‘배교 전쟁들’). 이어서 가까이 있는 공동체 안에서 초기에 메카인 개종자들이 나중에 개종한 자들과 싸웠다. 무함마드와 함께 메카로 여행하였던 이주자들과 메디나에서 그들이 정착하도록 도왔던 Ansar 부족 사이에 적대감이 커졌다. 결국은 무함마드 자신의 가족들 안에서 그가 사랑했던 부인과 그가 사랑했던 딸 사이에 폭력적인 전쟁이 있었고-그것은 시아파와 수니파의 불협화음을 내는 분열로 남아서 오늘날 까지 서로 상대방의 목을 따고 있다.

이슬람에 관하여 말하여 질 수 있는 가장 이상하고 가장 진실이 아닌 것은 이슬람이 평화의 종교라는 것이다. 서방세계가 심판되고 정죄되는 모든 기준이(노예제도, 제국주의, 불관용, 여성혐오, 성폭력, 전쟁....) 이슬람에 똑같이 적용된다면 판결문은 파괴적일 것이다. 이슬람은 결코 이슬람이 정복한 것들인 종교, 문화, 언어 또는 생활양식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슬람은 결코 사과하지 않으며 도덕적 진보에 맞춘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 이슬람은 대화가 막혀 있으며 가장 자기도취적이다. 이슬람은 그 스스로의 완벽함을 확신하지만 잔인할 정도로 자기 검증을 혐오하며 비평을 억압한다.

이것이 꾸란의 폭력에 관한 구절들을 그렇게 위험하게 만드는 것이다. 꾸란의 구절들은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무게감이 실려 있다. 무슬림 테러리스트들이 그 구절들을 그들의 책에 있는 글자그대로 취하며 지하드 없는 이슬람은 불완전하다고 이해하는 반면에 온건주의자들은 그들을 반박할 것이 거의 없으며 여론의 바깥에 있다. 정말로 그들이 무엇을 가지는가? 평화와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무지한 사람들을 속이겠지만 이슬람의 가장 성스러운 책이 열 두 번째 구절마다 비-무슬림에 대한 알라의 증오에 관하여 이야기하거나 비-무슬림들의 죽음, 강제개종, 복속을 요구할 때 비록 대부분의 무슬림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그들의 종교를 해석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지라도 테러리즘에 대한 공감이 그 공동체에 깊고 넓게 흐르고 있다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이슬람의 가장 존경되는 철학자들 가운데 한 명인 Ibn Khaldun와 같은 학자들이 “이슬람의 사명의 보편성과 모든 사람들을 설득으로 또는 강제로 이슬람으로 개종시키는 의무 때문에 성전은 종교적인 의무”라고 이해하였어도 많은 다른 무슬림들은 보편적인 비폭력을 전파하는 꾸란의 구절이 거의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 그들의 이슬람에 관한 이해는 다른 사람들에게 배운 것이다. 서방 세계에서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은 그들의 종교가 성경 신약이 평화, 사랑, 관용의 미덕을 전파하는 기독교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전형적인데 무슬림들은 이슬람이 모든 면에서 우수하다고 생각하도록 배웠기 때문이다. 꾸란의 증거와 이슬람의 피로 점철된 역사가 이것과 아주 많이 모순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들은 아마도 놀라고 당황하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단순히 폭력성을 받아들인다. 1991년 미국의 팔레스타인 부부가 너무 서구화된다는 이유로 딸을 칼로 찔러 죽인 혐의로 유죄가 선고되었다. 가족의 친구가 그들을 변호하기 위해서 나와서 배심원들이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비난하면서 그 아버지는 단지 “종교”에 순종하였음을 주장하며 그 부부는 “딸을 훈육하든지 명예를 잃어버리든지” 하여야 했다고 말하였다. 2011년에 분명하게 알라의 이름으로 시민들과 여자들과 아이들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뉘우치지 않은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이 사우디 왕에 의하여 메카로 호사스러운 “성지순례”를 하였지만 단 한명의 무슬림의 항의도 없었다.

무슬림들 입장에서는 단지 이슬람이 다르고 위험하다는 둘 다의 현존하는 진실을 피하기 위해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하나님에 관한 비평적인 생각을 제물로 삼지 않으려하거나  다른 종교를 비방하기 위한 구실들을 이슬람에서는 찾지 않는 서방세계 자유주의자들이 잘하는 것이다.

꾸란을 글자그대로 해석하는 무슬림들이 너무 많이 있고....이슬람의 이름으로 행하여진 폭력에 관하여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다.

원문보기 http://www.thereligionofpeace.com/Quran/023-violence.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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