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란은 증오심을 전파하는 책인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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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가장 거룩한 책이 비-무슬림에 관하여 말하는 것
서론
왜 폭력인가? 왜 무관심인가?
2002년9월25일 파키스탄 카라치에서 한 무리의 무장한 무슬림들이 기독교 자선단체 사무실에 들어가서 직원 7명을 의자에 묶고 잔인하게 살해하였다. 무슬림 목격자들에 따르면 그 이슬람주의자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기독교인들을 분리하는데 15분이 걸렸고 그들의 목표물 한명 한명을 가장 잔인하게 죽이는 일을 확실히 하였다.”
이슬람의 철저한 추종자들에 의한 인도주의적인 일을 하는 비-무슬림인 사람들의 죽음은 아주 자주 일어난다. 그 처형은 통상적으로 무슬림들에 의하여 기념되지 않지만 까다롭기로 유명한 공동체에 의하여 이슬람의 이름으로 일어난 살인에 대한 어떤 분노도 거의 표시되지 않는다.
반대로 꾸란 모독 또는 무함마드 만평에 관한 소문들은 극단적인 항의, 폭동, 방화, 초상 태우기 등을 초래하며 비-무슬림에 대한 대량학살은 통상적으로 입이 벌어지게 한다. 9.11이후 6년 동안 만 건 이상의 극단적인 이슬람 테러행위가 계속되었으나 그것들 모두에 대하여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분노하지 않았고 기껐하는 이야기는 Abu Ghraib 교도소 또는 Guantanamo 수용소가 자극했다는 것이다.
이 중대한 도덕성의 부재는 많은 서방세계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며 특히 이 현실을 이슬람이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종교라는 정치적으로 타당한 가정으로 조화시키려 하는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유대-기독교 전통이 보편적인 사랑과 이타적인 것을 전파하니까 이슬람도 같은 원리에 근거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보다 철저한 무슬림들은 가장 평화를 사랑하고 가장 덜 위험할 것이라고 기대된다.
그러나 이슬람이 평화와 관용의 종교라는 무슬림 옹호자들의 장밋빛 주장 뒤에는 폭력과 깊이 뿌리박힌 차별을 잘 설명하는 많은 어두운 현실이 있다. 아주 단순하게 꾸란은 우월성과 증오와 적대감을 가르친다.
증오에 관한 말들을 정의하는 요소를 생각해보자:
⦁이슬람의 정체성을 가진 집단과 그 밖의 사람들과 사이의 확실한 구분
⦁이 구분에 근거한 도덕적 비교
⦁다른 집단의 평가절하 또는 인간성 말살과 이슬람 자체의 독특한 우월성
⦁정체성 집단의 소속에 근거한 대우의 다른 기준 주장
⦁다른 집단 구성원에 대한 폭력 선동
슬프게도 그리고 많은 고상한 무슬림들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꾸란은 각 항목에 대하여 증오 스피치로 구성되어 있다.
이슬람의 가장 거룩한 책(꾸란의 61%가 비-무슬림에 관한 것이다)이 무슬림들(가장 우수한 사람들, 3:110)과 불신자들(최악의 피조물들, 98:6) 사이의 선명한 구별의 선을 긋는다. 무슬림들에게는 칭찬이 아낌없이 부어지며 반대로 불신자들에게는 전체적으로 지옥 불에 타는 것으로 정죄된다. 보편적인 사랑을 가르치는 것과 거리가 멀어서 꾸란은 끊임없이 비-무슬림들을 사악한 짐승과 비교하고 그들에 대한 알라의 증오와 그들의 영원한 고문에 대한 알라의 어두운 계획을 보여주면서 비-무슬림들의 열등함을 전파한다. 자연히 무슬림들에 의한 불신자들에 대한 거친 대우도 마찬가지로 장려된다.
그러면 무슬림들에 의하여 알라가 직접 기록한 영원한 말씀이라고 믿어지는 꾸란이 비-무슬림들에 대하여 무엇을 말하는가?
꾸란은 무슬림들과 비-무슬림들을 구별하고 상대적 가치의 계급을 설정한다.
꾸란은 이슬람이 보편적인 형제애에 관한 것이 아니며 믿는 자들의 형제애에 관한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믿는 자들은 한 형제라”(49:10)
이슬람 아래서는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지 않다. 예를 들어 꾸란 16:75-76에 따르면 노예들과 장애인들은 건강하고 자유로운 사람들과 평등하지 않다. 꾸란은 “평등의 법”을 도입하는데 이것은 살인에 대한 보복(2:178)과 같은 어떤 문제들을 고려할 때 다른 수준의 인간가치를 설정한다.
무슬림 믿는 자들은 비-무슬림들과 평등하지 않다:
“아는 자와 모르는 자가 같을 수 있느뇨?” (39:09)
“장님과 보는 자가 같을 수 있으며 암흑과 빛이 같을 수 있느뇨?” (13:16)
꾸란은 무슬림들이 은혜 받은 종족이고 반면에 다른 종교의 사람들은 “사악한 자들”이라고 분명하게 무슬림들에게 말한다:
“너희는 가장 좋은 공동체이 백성이라 계율을 지키고 악을 배제할 것이며 알라를 믿으라 만일 성서의 백성들이 믿음을 가졌더라면 그들에게 축복이 더했으리라 그들 가운데는 진실한 믿음을 가진 자도 있었지만 그들 대부분은 사악한 자들이더라”(3:110)
나중에 보겠지만 알라는 단지 그들의 불신앙에 근거하여 비-무슬림들을 정죄하는 반면에 내세에 무한한 음식과 술과 섹스(56:12-40)를 포함한 최상의 육체적인 괘락으로 믿는 자들에게 보상한다. 사실 꾸란의 대부분이 무슬림들과 비-무슬림들을 차별하고 비-무슬림들을 비난하는 부분이다.
꾸란의 첫 번째 장이 이것의 예이다. 이것은 철저한 무슬림들이 매일 되풀이하고 이 말씀으로 끝나는 간단한 기도이다:
“저희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 길은 당신께서 축복을 내리신 길이며 노여움을 받은 자나 방황하는 자들이 걷지 않는 가장 올바른 길이옵니다”(1:6-7).
이 구절들이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포함하는지를 무함마드에게 질문하였다. 그의 대답은 “그럼 누구인가?” 였다. (Bukhari 56:662).
알라가 무슬림들과 비-무슬림들 사이에 확실한 구별을 하였기 때문에 비-무슬림들을 대우하는 절대적인 기준을 무슬림들이 그들의 삶속으로 구체화해야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일 뿐이다. 꾸란은 무슬림들이 서로 간에는 자비하고 이교도들에 대하여는 무자비하라고 말한다:
“무함마드는 알라의 선지자이며 그와 함께하는 자들은 불신자들에 대항하여 마음이 강하고 그들 사이에서는 서로 정이 오가니라...”(48:29)
알라는 무슬림들이 불신자들에 대하여 승리하도록 해준다:
“알라께서는 그 불신자들이 신앙인들을 지배하도록 두지 아니 하시니라”(4:141)[Pickthall – “성공하는 어떤 방법”] (4:141)
비-무슬림들이 무슬림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유일한 길은 이슬람의 지배에 복속되는 것이다:
“알라와 내세를 믿지 아니하며 알라와 선지자가 금기한 것을 지키지 아니하고 진리의 종교를 따르지 아니한 자들에게 비록 그들이 성서의 백성이라 하더라도 항복하여 인두세를 지불할 때까지 그들에 대항하여 싸우라 그들은 스스로 저주스러움을 느낄 것이라.”(9:29; 인두세는 완전한 이슬람 국가에서 비-무슬림들이 그들의 무슬림 지배자들에게 지불해야 하는 돈이다)
많은 무슬림들에 대한 통상적인 비난은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자주 거만하게 행동한다는 것이다. 지금 당신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꾸란은 비-무슬림들의 인간성을 말살하고 그들이 사악한 짐승들이라고 말한다.
이슬람 연구에 평생을 바친 Ayatollah Khomeini는 비-무슬림들이 “배설물”과 “불결한 음식을 소화하는 낙타의 땀” 사이의 서열위치에 해당한다고 말하였다. 이상할 것 없다. 꾸란은 비무슬림들이 “동물들”과 짐승들이라고 말하며 그들의 인간성을 말살한다:
“성서의 백성들 중에 진리를 거역한 자들과 불신자들은 불지옥에 있게 되리니 그들은 그 안에서 영주하매 가장 사악한 무리들이라”(98:6).
“실로 알라가 보시기에 가장 사악한 동물은 불신하며 믿지 아니하려는 자들이라” (8:55).
7:176 구절은 불신자들의 백치 같은 언행과 값어치 없음에 관하여 그들을 “헐떡거리고 있는 개들”에 비유하고 있다. 7:179 구절은 불신자들이 더 악하게 “짐승”과 같다고 말한다.
5:60 구절은 알라가 과거에 유대인들을 원숭이와 돼지로 변신시켰다고 말한다. 이 구절은 7:166과 2:65에 의하여 반복된다.
한 하디스(Bukhari 54:524)는 무함마드는 쥐가 유대인을 닮았다고 믿었다고 말한다(또한 Sahih Muslim 7135와 7136에 의하여 확인된다).
46:29-35 구절은 불신하는 사람은 무함마드를 믿는 마귀보다 더 악하다고까지 말한다.
이슬람법에 따르면 비-무슬림들은 무슬림들에 의하여 재산으로 소유될 수 있지만-이슬람이 가장 우월하다는 메시지에 따라서-동료 무슬림들은(그들이 노예상태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았다면) 재산으로 소유될 수 없다.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 가운데 한 명을 살해한 형벌이 본의 아니게 한 무슬림을 살해한 것에 대한 보상의 3분의 1로 제한함으로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은 완전한 인간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꾸란은 알라가 불신자들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기독교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만 죄는 미워한다고 가르친다. 꾸란은 절대로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대신에 꾸란은 알라가 자신을 믿지 않는 자들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선포한다.
“그분은 불신자들을 사랑하지 아니 하시니라”(30:45)
알라는 무함마드에게 복종하는 자들만을 사랑한다(적어도 그 알라의 계시를 제공하는 무함마드에 따르면):
“알라와 그분의 선지자에게 순종하라 하였으니 이를 거역하는 자 있다면 알라는 이 불신자들을 사랑하지 아니 하시니라”(3:32).
죄를 미워하나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대신에 알라의 분노는 개인들에게 골고루 미친다:
“알라는 배신하며 은혜를 모르는 자는 사랑하지 아니하시노라”(22:38).
11:118-199 구절은 알라가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그는 어떤 사람은 선택하여 인도하지 않는다:
“알라께로 향하는 길이 있으되 어떤 길은 고르지 못한 길도 있노라 그러나 그분이 원하신다면 너희들 모두를 인도하셨으리라”(16:9).
알라가 사랑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영원히 불에 타는 것을 포함하여 가장 무서운 영원한 고통이 있을 것이다:
“나의 계시를 불신하는 자들을 불지옥으로 들여보내니 그들은 그들의 피부가 불에 익어 다른 피부로 변하는 고통을 맛보더라 실로 알라는 전지전능하심이라”(4:56).
“알라는 믿음이 없는 자들의 대적이시라”(2:98)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보게 될 것인데 그는 그들을 아주 많이 미워하여 그들이 죄를 짓도록 인도하기도 하여 실제적으로 자신을 믿지 못하게 함으로서 그들의 운명을 확실하게 만든다.
꾸란은 비-무슬림들이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무함마드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알라가 사랑한다는 말이 꾸란 어디에도 없으나 알라가 다른 종교(또는 무신론자)의 사람들의 위하여 준비한 고통을 묘사하는 400개가 넘는 구절들이 있다:
“이슬람 외에 다른 종교를 추구하는 자가 있다면 결코 용서받지 못하고 내세에서 패망자 가운데 있게 되리라”(3:85).
비-무슬림의 상대적 가치는 그들이 지옥 불에 탈 연료일 뿐이라는 것이다:
“믿음을 배반한 그들의 재산과 자손이 그들에게 아무런 효용이 되지 못하고 불의 연료가 될 것이라”(3:10 Shakir: "지옥의 땔감“)
그들이 불의 연료이기 때문에 불신자들은 그의 명령에 따라 알라의 천사들에 의하여 고통 받을 것이다:
“믿는 자들이여 인간과 돌들이 연료가 되어 타고 있는 불지옥으로부터 너희 자신과 너희 가족을 구하라 불길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엄하고 가혹한 천사들이 알라께서 명령한 대로 거역하지 않고 집행할 것이라”(66:6).
불신자들이 얼마나 많은 선행을 하는지 문제가 되지 않는데 알라는 그것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알라를 불신하는 자를 비유하사 저들이 하는 일은 폭풍이 부는 날 폭풍에 휘날리는 재와 같아 저들이 얻은 것을 감수하지 못하고”(14:18).
“알라가 저들의 행위로 손실이 가장 큰 자를 너희에게 일러주리요 저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선행이라 생각하면서 현세의 삶에만 매달리노라 저들은 알라의 말씀과 만남을 부정하는 자들이니 저들의 일들은 무용지물로 끝날 것이라 심판의 날 알라는 저들에게 아무런 가치도 두지 않으리라 지옥이 저들을 위한 보상이라 이것은 저들이 믿음을 거역하고 알라의 말씀과 선지자들을 조롱하였기 때문이라”(18:103-106).
무함마드는 선지자라는 자신의 주장을 거부하는 자는 누구든지 지옥으로 갈 것이라고 자기 부하들에게 말하였다:
“알라와 선지자들을 불신하며 알라와 선지자들을 이간시키려 하는 자들이 일부는 믿고 일부는 부정하나이다라고 말하며 그 중간의 길을 택하겠다고 하더라 실로 이들이야 말로 불신자들이거늘 알라는 이 불신자들에게 치욕스러운 벌을 준비하여 두셨노라 알라와 그분의 선지자들을 믿고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선별하지 아니한 자들에게는 보상이 준비되어 있노라”(4:150-152).
기독교에서 내세의 형벌은 죄와 ‘사악함’의 직접적인 결과이다. 상대적으로 지옥에 관한 말이 거의 없지만 강조하는 있는 것은 이기적이거나 잔혹한 행위에 대한 개인적인 고통이다. 이슬람에서 지옥은 무함마드의 자신에 관한 개인적인 주장을 믿지 않은 것에 대한 형벌일 뿐이다. 성경과 대조적으로 꾸란은 평균적으로 12번째 구절마다 지옥에 관하여 말하며 불신자들에 대한 알라의 분노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불신하는 자들은 불길에 옷이 찢기며 끓는 물이 저들의 머리 위에 부어지니라 그리하여 저들의 내장과 피부도 녹아내릴 것이라 저들을 벌할 철로 된 회초리도 준비되어 있노라 그로인한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나 저들은 다시 그 안으로 되돌려와 불의 징벌을 맛볼 것이니라”(22:19-22).
극도로 증오하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이러한 방식으로 사람을 고문할 수 없다. 알라의 불신자들에 대한 극도의 혐오는 이슬람을 안 믿는 사람들에 대한 무슬림들의 태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무슬림들의 개인적인 우월성은 꾸란의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그려진 대조되는 그림들에 의하여 확인되는데 꾸란에서 무슬림들은 천국에서 가장 큰 육체적인 쾌락으로 보상되며 반대로 불신자들은 동시에 무서운 고통을 받는다(단 하나의 예만 들어서 56장을 보라).
알라 자신이 비-무슬림들이 알지 못하게 막는다.
알라가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분노를 피할 기회를 준다면 이치에 맞지 않을 것이다. 꾸란은 알라가 고의적으로 불신자들이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그들의 길에 장애물을 놓아둔다고 말한다:
알라가 원한다면 그는 모든 영혼을 인도할 수 있다:
“만일 알라의 뜻이 있었다면 알라는 누구에게나 복음을 주었으리라”(32:13).
그러나 대신에 그는 마음에 베일을 씌우고 그들의 귀를 막아버렸다:
“알라는 저들의 마음을 봉하니 이해하지 못하고 저들의 귀를 막으니 듣지 못하더라 그러므로 그대가 저들을 복음으로 인도한다 하여도 저들은 결코 바른 길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18:57) 또한 17:46과 45:23을 보라.
알라는 불신자들이 믿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멍에와 장애물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 말씀들이 그들 다수 위에 진리로 나타났으나 그들은 믿지 아니 하더라 알라는 그들의 목에 멍에를 씌우니 그것이 그들의 턱까지 이르매 그들의 고개가 위로 올라 볼 수 없게 되었더라 알라가 그들 앞에 장애물을 놓고 그들 뒤에도 장애물을 두며 그들 위로 덮개를 씌우니 그들은 보지 못하더라 그대가 그들에게 경고를 하던 경고를 하지 아니 하던 그들은 마찬가지로 믿지 않노라“(36:7-10).
같은 목적으로 알라는 불신자의 마음을 의심으로 채운다:
“어느 누구도 알라의 뜻이 아니고는 믿지 아니하며 그분께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의심(또는 모호함)을 두실 것이다”(10:100).
알라는 실제적으로 비-무슬림들이 죄를 짓도록 만든다.
불신자들이 진리를 알지 못하게 막는 것(이것은 그들을 지옥으로 정죄하기에 충분하다)으로 만족하지 않고 꾸란은 증오로 가득 찬 알라가 불신자들로 하여금 자신이 나중에 그들을 처벌할 그 죄를 범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알라가 원하시면 너희 모두를 한 공동체로 만들 수 있노라 그러나 그분이 원하는 자를 방황케하고 그분이 원하는 자를 인도하시니 행하였던 것에 관하여 너희가 심문을 받으리라”(16:93).
사탄이 무슬림들을 유혹하지만 불신자들이 실수하도록 만드는 자가 알라 자신이다.
“...알라께서 이들을 방황하게 하면 그대는 그를 위한 길을 찾지 못하리라”(4:143, 또한 4:88과 74:31을 보라)
알라는 고의적으로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들을 방황하도록 보낸다:
“....알라는 그를 방황케 하셨으매 그의 귀와 마음을 봉하여 버리고 그의 시각도 봉하여 버렸으니 알라 외에 누가 그를 인도하리요 그럼에도 너희는 숙고하지 않느뇨?”(45:23)
알라는 불신자들이 더 (알라가 나중에 그 행동들에 대하여 추궁할)나쁜 행동을 저지르도록 선동하기 위하여 마귀들을 보낸다:
“그대는 모르는가? 알라가 불신자들에게 사탄들을 보내어 저들을 화나게 했노라”(19:83)
3:54 구절에 따르면 알라는 속임수(사용된 단어 makara의 문자적 의미)를 사용하여 불신자들에 대하여 음모와 계략을 꾸민다. 그 밖에 꾸란은 알라가 불신자들이 나쁜 행동으로 단지 그들 자신의 영원한 형벌을 심화시키고 있을 때 선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도록 속이고 있다고 설명한다.
“내세를 믿지 아니한 자들의 행위들이 그럴듯하게 보이게 하매 저들은 방황하였으니”(27:4) 또한 39:23, 6:39, 35:8, 13:27, 14:4을 보라.
알라는 불신자들이 선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속이기 위하여 사탄이 자신과 함께하도록 불러모은다:
“그들의 마음은 더욱 굳어졌으니 사탄이 그들의 행위를 올바른 것처럼 보이게 하였더라”(6:43)
물론 농담과 같은 이야기는 비-무슬림에 관한 것인데 그들은 심판의 날에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하였는데 어째서 지옥에 보내졌는지 항의할 것이다:
“저들은 순종하듯 우리는 어떤 죄악도 범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라고 말하니 천사들이 그렇지 아니함이라 실로 알라께서는 너희가 행하였던 모든 것을 알고 계시니라 하더라 그러므로 지옥의 문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영생하라”(16:28-29)
원문보기 http://www.thereligionofpeace.com/Pages/Quran-Hate.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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