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슬람지하드워치
꾸란

이슬람에 대한 균형 잡힌 이해

작성자 워치독 작성일16-12-06 19:47 조회2,8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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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에 관한 이해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회신

글쓴이 Ahmed Simon

다른 사람들이 믿고 대변하는 것을 잘 이해하는 것은 사회가 문명화되었다는 좋은 표시이고 장려되어야 하지만 (무슬림들이 마찬가지로 비-무슬림 종교를 이해하려고 하는)그것이 양측에서 같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슬람에 관한 균형 잡히고 사실적 이해를 제공하기 위해서 온전한 진리는 진리일 뿐이라는 부인할 수 없는 진리가 있다. 우리는 다른 종교들과 관련하여 과감하게 이슬람 종교를 검토할 것이다.

예언자 무함마드가 이슬람을 창시하였다. 그러나 수많은 증인들이 있는 가운데 하나님과 직접 대화하고 영감을 받고 지시받은 다른 모든 종교들의 예언자들과는 달리 꾸란 수라 2:97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천사 가브리엘이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꾸란을 계시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알라의 독백(계시)이 간접적으로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전해졌고 이 중요한 독백에 단 한명의 목격자도 없다. 받은 이 독백들이 꾸란(이슬람의 가장 신성한 경전)안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언자 무함마드는 교육을 받지 못한 완전한 일자무식이었고(읽거나 쓸 줄 몰랐다) 교육을 잘 받은 다른 종교들의 예언자들과는 달리 기억력이 빈약하였다.[의문은 알라가 왜 제 3자를 통하는 식으로 무함마드를 제 3의 등급으로 취급하는 대신 (다른 예언자들과 마찬가지로) 직접 대화를 하지 않았는가 이다]

힌두교의 베다는 5만 구절이상이다. 꾸란의 6,241구절에 비교하여 불경은 3만 구절이상이고 도교 경전은 2만구절 이상이며 바하이 경전은 1만2천 구절로 되어있다. (꾸란은 상대가 안 된다).

꾸란은 한 권이지만 성경은 66권이다. (수라 목록과 전체 색인을 포함하여)꾸란은 433페이지 이고 (서문과 머리말, 목차, 66권의 각 표지, 색인목록, 주제목록 페이지들을 포함하지 않고)성경은 1,709페이지이다(전혀 상대가 안 된다).

성경의 구절들은 방대한 31,173(23,214+7,959)구절이고 꾸란은 얼마 안되는 6,241 구절이다. 꾸란은 114수라(장)이며 성경은 1,189장이다. 성경은 엄청나게 많은 774,746(593,493+181,253) 단어로 만들어졌다.(꾸란은 상대가 안 된다)

실제로 꾸란은 수라 22:52에 알라가 꾸란에서 사단의 구절을 제거하였다고 말한다.(사람들은 왜 사단의 구절이 처음부터 꾸란에 있었는지 궁금해 한다). 수라 16:101은 알라가 자기의 계시들 가운데 일부를 제거하고 다른 계시로 대체한다고 확인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왜 알라가 자기 자신이 한 것을 바꾸고 개량하고 개선하는지 궁금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분이 처음부터 완벽하고 최고의 유일하고 진정한 하나님이기 때문에 자신의 성경에서 개량과 교정을 할 필요가 없다.(왜 알라는 처음부터 계시를 똑바로 할 수 없었을까?)

알라는 수라 2:106에서-“우리가 폐기(취소)하고 또는 잊혀지게 만드는 우리의 계시들에 대하여 우리는 (대체하여) 그와 같은 것 또는 더 나은 것을 가지고 온다.”(꾸란의 계시들을 취소? 잊혀지게 만들어? 왜 알라가 그러한 실수를 하였을까?)

‘이슬람’이란 단어는 (무슬림들의 하나님)알라에게 복종 또는 항복을 의미한다. 수라 9:29에서 무슬림들은 알라에게 복종 또는 항복하지 않는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을 살해하라고 명령받는다. 그러나 진정한 유일신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은 알라와는 다르게 우리에게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9:5에서 알라는 무슬림들에게 모든 우상숭배자들을 살해하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나는 무슬림들이 석조물(카바신전)과 그것의 벽에 박힌 검은 돌에 기도하는 것은 알라에게 상관없다고 생각한다.(무슨 위선인가?)]

나가서 알라는 수라 2:191에서 “종교가 오직 알라만을 위한 것이 될 때까지” 죄인들을 살해하라고 말한다. ‘죄인’이라는 단어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서 어떤 것이든 의미할 수 있다. 그러면 사람들이 죄인으로 정의되는 한계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특히 꾸란에 어디에도 언급된 한계가 없는데)? ‘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고 무슬림이 어떻게 죄에 대하여 비-무슬림에 대한 심판을 적용할 수 있을까(그래서 심판을 적용하는 것이 각 개인의 생각에 따르고 꾸란과 알라에 의하여 권위가 주어져 모든 사람에 대하여 자유가 된다)? 학교 당국자들이 ‘공감’을 요구할 때 그들은 무슬림들이 비-무슬림들에 대한 이 알라의 그러한 잘 못 정의되고 완전히 불공평하며 모든 것에 적용되는 사악한 구절들 때문에 곤경에 빠진 비-무슬림들에게 먼저 공감해 줄 것을 부탁해야 할 것이다. 만약에 비-무슬림들이 이 똑같은 수라를 무슬림들에게 적용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공감’은 ‘쌍방 간에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우리 문명화된 비-무슬림들은 그러한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이고 관용이 없고 사악한 위선을 가진 종교를 따르지 않는다. (‘알라’는 B.C. 2500년부터 Siva 신의 영적인 배우자인 힌두교 여신 Durga를 부르는데 특별히 사용된 산크리스트 단어이다).

무슬림들은 처음에 기도하기 위하여 메카(카바신전)를 향하였다. 꾸란에서 기도하는 방향이 (카바신전을 무시하고)메카에서 예루살렘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수 백 년 후에 또 다시 바뀌어 수라 2:142-145가 말해주듯이 다시 메카를 향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기 때문에 모든 비-무슬림 종교들은 기도하는 방향을 어디로 향하든지 자유로우며 하나님은 들으신다. 왜 지구상의 한 지점에 초점을 맞추려고 하는가(알라가 거기에 있는가)?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무슬림들의 초점의 궤적은 사실상 우주공간을 향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미국 무슬림들은 지구의 반대 방향에 있는 메카를 향하기 위하여 지구를 관통하는 자신들의 발을 향하여 보아야만 한다. 카바신전이 보이는 거리 내에 있지 않는 한 모든 무슬림들은 사실상 메카가 아닌 우주공간을 향하고 있다. 알라는 세상을 창조하였다면서도 세상이 둥글다는 것을 몰랐는가? 그러나 더 가관인 것은 알라가 수라 15:19, 78:6 그리고 88:20에서 지구가 평평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수라 18:86에서 알라는 특별하게 태양이 지구의 땅위에 있는 흙탕물의 샘으로 진다고 말하고 있다.(태양이 매일같이 어떻게 뜨는지는 수라 18:90에 있는 또 다른 바보 같은 이야기이다).

수라 4:7-14에서 알라는 자신의 상속법을 애써서 구체적으로 선포하지만 문제는 사람들이 어떻게 계산해도 그것이 주어진 유산의 100%로 합하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누가 약 먹었는가?). 꾸란은 수라 15:19, 21:31, 31;10, 78:7, 88:19에서 땅이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하여 말뚝과 같이 산들을 박았다고 가르친다. (지금 이것은 지리학자들과 화산학자들이 놀라서 말이 않나오게 만든다). 수라 41:9-12에서 알라는 땅과 하늘을 2일 만에 창조하였다고 말하지만 수라 2:117에 알라는 하늘과 땅을 즉각적으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알라는 더나가서 수라 7:54, 10:3, 11:7, 25:59에서 6일이 걸렸다고 말한다. 그러나 다시 알라는 수라 41:9-12에서 하늘과 땅에 대한 자신의 창조를 설명하는데 8일(2일+4일 +2일)이 걸렸다고 말한다. (지금 정말로 누가 혼동되는가?).

수라 4:11에서 말하듯이 무슬림 남성은 무슬림 여성의 2배를 상속받으며 여성은 남성증인의 절반의 가치가 있을 뿐이다. 수라 4:34에서 무슬림 남편은 아내가 순종할 때까지 아내를 바로잡기 위하여 아내를 채찍질 할 수 있다. 비-무슬림 종교에는 그러한 성차별과 야만적인 행위가 없으며 하나님 앞에 모든 기독교인은 평등하다.

수라 4:74에 알라는 이슬람을 전파하기 위하여 무슬림들이 “알라의 이름으로” 불신자들을 살해하라고 명령한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서로를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이라고 말한다.

사실상 꾸란은 예언도, 기적도, 역사도, 지리도, 연대도, 순서도, 비유도, 누군가의 전기도 없는 전체적으로 ‘하라’와 ‘하지마라’에 관한 구절들로 뒤범벅된 비교적 작은 책일 뿐이다.

이슬람은 다른 어느 종교와 어느 기준, 그리고 사람들이 그것을 보는 어느 방식과도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다.

(꾸란에는 하나님과 연결하면 신성모독이 되는 더 많은 모순들과 오류들과 증오와 불합리함과 폭력과 성차별과 만행과 불관용과 사악함이 있다).

이제 금식의 문제로 가보자. 일반적으로 모든 종교는 금식을 실천한다. 논리는 굶주리고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경험하는 것이고 굶주리고 가난한 사람들과 절약된 음식과 돈을 나누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종교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R.O.I 학교 당국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금식하는 사람이 정말로 얼마나 나를 황당하게 만드는가?

이슬람에서 28일 동안의 금식은 낮 시간(약 12시간 동안) 동안 행하여지며 무슬림들은 어두워진 시간동안 매 3시간 또는 그 안팎의 간격으로 3번에서 5번 먹으며 매일 밤(알라가 보지 않을 때?) 낮 시간 동안 먹지 않은 음식보다 더 많이 소비한다. 그러나 낮 시간동안의 금식과 밤에 더 많이 먹는 것으로 인하여 무슬림들은 실제로 24시간에 평상시 보다 더 많은 음식과 돈을 소비하여서 굶주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진정한 희생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중에 그들은 실제로는 절대로 희생되지 않은 것을 가난한 자들과 나누었다고 생각하면서 위선적으로 더 많은 돈과 음식을 가지고 나온다. 낮이 아닌 밤에 음식을 소화하는 것에 몸이 적응하도록 조정하는 처음 2일을 제외하고(예를 들면 밤에 일하는 사람들과 같이) 본래의 논리적인 금식의 목적을 벗어나서 하나님은 굶주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희생이 전혀 안 이루어 졌다는 것을 알며 무슬림들은 속이고 있다. 이것이 이슬람의 또 다른 거짓이다.

비-무슬림들은 이러한 무슬림들이 자신들의 동족에게서 박해로 인하여 피난하여 왔을 때 전 세계적으로 자신들의 무수한 국가들에서 쉼터와 음식을 제공함으로 무슬림들에게 진정한 동정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우리의 친절과 관대함에 대한 보답으로 무슬림들은 발리에서, 필리핀에서, 자카르타에서, 신장에서, 카슈미르에서, 파키스탄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이라크에서, 요르단에서, 이스라엘에서, 수단에서, 이스탄불에서, 모로코에서, 알제리에서, 케냐에서, 차드에서, 니제르에서, 체첸에서, 뉴욕에서, 워싱턴에서,(부시 대통령은 영국에서 “이것이 꿈이 아니고 실상이다”라고 말하였다) 수 천 명의 무고한 비-무슬림 남자, 여자, 어린아이들을 살해하였다. 모든 사람이 전 세계적으로 무슬림들에 의하여 비-무슬림들에게 가해진 차별과 학대와 고통과 고문과 살인을 알고 있다. 무슬림들은 비-무슬림들을 위한 어떤 동정도 과거에도 보여주지 않았고 현재도 보여주지 않는다. 사실 비-무슬림들이 폭탄테러로 인하여 형체가 없는 조각조각으로 날려질 때 무슬림들이 환호하는 것이 TV에 방영되었다.

실제로 꾸란에 잘 규정된 종교 지도자에 의하여 지도받는 모든 무슬림 테러리스트 집단에 관하여 이미 우리는 알고 있다. 테러를 위하여 이러한 테러리스트들에게 자금을 제공하는 순진해 보이는 (우리 주위의)무슬림들도 우리는 알고 있다. 무슬림에게서 꾸란을 빼앗을 수 없지만 그가 비-무슬림이 된다면(내가 그 예이다) 스스로 그는 꾸란을 버릴 것이다.

비-무슬림들을 위한 무슬림 ‘이해‘가 어디로 갔는가(또는 무슬림들이 이슬람 방식의 삶을 통하여 정말 어떤 양심을 가지게 되는가)? 이제 정직하게 말해서 이 모든 만행과 불관용과 사악함에 대하여 누가 ’이해와 공감‘이 필요한가?

원문보기 http://www.faithfreedom.org/articles/op-ed/a-tale-of-two-coun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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